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곁에 두고 읽는 니체, 나도 초인이 되고 싶다, 읽기 전 나의 생각

니체에 흠뻑 빠졌던 2010년대는 철학이 대중들 입맛에 맞게 해석된 책들이 쏟아져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나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책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슬쩍 넘겨서 읽어도 되다가 저자의 해석이 담겨 있는 글들을 읽고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보면 대충은 감이 잡힙니다. 이 글을 쓰며 니체의 철학과 저자의 사유에 저의 생각을 얹는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왜 나는 니체를 좋아하는가?


머리 검은 짐승은 저마다의 고난을 안고 산다고 합니다. "머리 검은 짐승 = 인간" 한국인의 머리가 검기에 그에 빗대어 머리 검은 짐승이라고 하면 인간을 뜻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난을 안고 살아갑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유유자적하며 살아왔는데도 이 책이 끌렸던 것을 보면 그때도 그때 나름의 고난이 저와 함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은 후 갑자기 니체가 다시 저를 끌어당겼고 저는 바로 끌어당겨졌습니다. 그의 명언만이 아닌 그의 철학을 다시 마음에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나 니체에 끌릴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의 콧수염이 귀여웠고, 사랑 앞에서 좌절하여 3일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간 글이 평생의 역작이 된 천재성이 부러웠습니다. 시련 앞에서도 꼳꼳이 고고한 태도를 유지한 그가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명언들이 너무 멋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는 니체를 좋아합니다.

초인? 초사이어인? 드래곤볼

현재보다 퇴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과거를 돌리고 싶지, 퇴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거를 돌리고 싶은 이유는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서 현재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퇴보하지 않고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확신한 임무를 부여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가슴속 욕망을 일깨우며, 그로 인해 항상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한 것이 향상심입니다. 향상심을 가진이가 니체가 말하는 초인 '위버멘쉬'입니다.
위버멘쉬는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존재,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super man, over man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갑지가 드래곤볼이라는 만화가 생각나네요. 거기에도 '초'단어가 등장합니다. 전투민족인 사이어인을 초월한 '초사이어인'.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드래곤볼에 나오는 손오공도 그런 의미에서 "초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래곤볼을 보다 보면 역대급 보스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에 공감하게 되죠.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손오공은 필사적으로 수련에 임하며 적들을 물리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적들에게 에너지파를 쏟아냅니다. 손오공과 싸웠던 적들은 후에 손오공에게 감화되어 거의 모두 그의 친구가 되어있습니다. 고통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힘들었던 일이 이제는 제 인생의 자양분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 고통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것을 극복해낸 기억은 앞으로도 저와 함께할 것입니다. 과거엔 적이었지만 현재엔 친구가 된 손오공과 악당들처럼요.

책을 읽기 전 니체 관련 키워드를 찾아봤습니다. 권력에의 의지, 낙타, 사자, 아이, 초인 등 책을 읽고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